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C 서울 (문단 편집) === 경기력 면에서 === 전북과 함께 2000년대 후반에 떠오른 신흥강호. 2000년대 초반까진 [[성수울포]]에 밀려 강호 이미지는 없었고 하위권이었던 시절이 길었다. 3차례 우승을 거두긴 했으나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라 시즌별로 경기력 변동이 심했다. 85년은 프로팀과 실업팀이 혼재한 형태였고(프로 6팀, 실업 2팀) 1986년 추계리그 우승으로 강팀으로 남나 싶더니 87년 5개 팀 중 5위, 88년 5개 팀 중 4위를 기록하며 심한 기복을 보였고 팀이 6개로 늘어난 1989년 2위에 이어 1990년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음해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1992년 3위, 1993년 2위를 제외하면 1990년대 내내 하위권에 머물렀다. 2000년에 그룹의 대대적인 투자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음해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다.(1→2→4→8) 잃어버린 옛 연고로 돌아온 이후 반전이 시작되어 [[세뇰 귀네슈]]-[[넬루 빙가다]] 시기로 모기업 [[GS|GS그룹]]의 풍족한 지원, 프런트의 착실한 플랜, 서울 프리미엄에 힘입어 강호로 급부상했다. '''2007년 이후의 서울 팀컬러는 세뇰 귀네슈와 [[최용수]]의 역사다.''' 2007~2009년 귀네슈 감독 시절에는 [[이청용]], [[기성용]]을 중심으로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준수한 미드필드 진을 필두로한 빠르고 짧은 패스축구를 구사했다. 경기 당 한번씩은 꼭 공을 받지 않고 흘리거나 다이렉트로 뒤로 차주는 플레이를 펼쳐보이는게 특징.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으로 전방에서 부터 압박해 치고 올라가기 때문에 [[K리그]] 전체에서 오밀조밀하고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서울이 '''K리그의 아스널''' 같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다. 그 시절 국가대표급 중앙 수비진을 보유했지만 한때 중앙 수비수들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이 많은 편이었으며,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스쿼드는 패기넘치고 창의적인 전술을 펼치는 데에는 큰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분위기에 쉽게 휩쓸려 경기력 기복이 심해질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이을용, [[김한윤]] 등 노장선수들도 굉장히 거칠고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베테랑 선배로서 모범을 많이 보여주지 못하였다. 특히 2008, 2009년 시즌을 무관으로 보낸 것은 이 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2010 시즌에는 베테랑들이 많이 합류하고 기존의 젊은 선수들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 조직력을 쇄신하면서 귀네슈 감독 때의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 그 해 홈경기는 개막전인 전북 전을 제외하고 모두 승리하였고 시즌 내내 훌륭한 경기력을 이어가면서 컵대회와 K리그 더블 우승을 일구어내었다. 빙가다 감독이 1년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황보관]]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2011년 시즌 초반부터 극심한 부진을 겪게되면서 K리그 최단기간 부임이란 불명예를 안고 자진사퇴하게 된다. 그 해 4월부터 수석 코치였던 최용수가 감독대행으로 시즌을 책임졌는데 하위권이었던 리그 성적을 3위로 마무리하고 조별리그 탈락위기였던 AFC 챔피언스 리그도 8강까지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시즌 도중 2010년까지 벤치 멤버였던 [[고명진(축구선수)|고명진]], [[고요한]] 등을 스타 플레이어로 키우면서 팬들에게 지지를 얻고 2012년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2012년에는 2011년 검증했던 [[데얀 다미아노비치|데얀]]과 [[마우리시오 몰리나|몰리나]]의 극강의 경기력을 보여준 공격 조합 [[데몰리션 듀오]]와 [[하대성]]과 [[고명진(축구선수)|고명진]], [[최현태]] 등이 이루는 안정적인 중원에,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보직 변경에 성공한 고요한 등의 맹활약으로 '''K리그 역대 최다 승점'''으로 2년만에 우승컵을 탈환에 성공한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 본인이 고집하는 주전 선수들만 기용하면서 유망주들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에게 패배하는 징크스가 계속되면서 팬들에게 시즌내내 질타를 받기도 했다. 2013 시즌은 서울 축구에 커다란 전기이기도 했는데 본격적인 쓰리백 전향이 시도된 시기다. 유로 2012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안토니오 콘테의 쓰리백에 영향을 받은 최용수의 쓰리백 이식 시도는 2012시즌 약체팀을 상대로 처음 시도되었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없이 하대성과 고명진으로 중원을 구성하고, 쓰리백에는 아디-김진규-김주영이 섰다. 구성원들의 이름값은 대단했지만 선수들의 전술이해도가 낮아서 이내 접었다. 초반 7경기 연속 무승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어느정도 반등에 성공한 2013시즌 중반 한동안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쓰리백 전환이 재시도된다. 이때는 가진 자원을 100% 활용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는데, K리그 역대최고의 측면 수비자원이자 센터백으로도 정상급인 아디와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고군분투하던 대표팀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준 [[김치우]], K리그 수위급 센터백 김진규와 김주영. 포백 체제에선 이 4명중에 한명은 벤치로 가야했는데 이들 모두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쓰리백을 포백과 병행했다. 다만 여전히 포백을 주로쓰면서 병행하는 정도였다. 2014시즌은 서울의 전력에 큰 변화가 닥친 해였다. 시즌전부터 서울의 전력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큰 문제는 데얀의 이적이었다. 7년간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K리그 외국인 선수 통산 최다골, 역대 최다골 2위에 오른 레전드 데얀의 빈자리는 기존 선수진으론 메우는게 불가능했다. 3시즌동안 데얀과 콤비를 이뤘던 몰리나는 리그와 아챔을 병행하며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노쇠화까지 겹쳐서 13시즌 후반기부터 폼이 뚝 떨어졌다. 2014시즌 외국인 선수 가운데 연봉 1위라는 비싼 몸값때문에 처분하는 데 실패. 그리고 무릎 부상으로 전반기를 사실상 공치게 되었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수비수라는 찬사를 받은 아디도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여기에 미드필더진에서 빌드업을 책임졌던 주장 하대성마저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면서, FW-MF-DF 세 라인에서 핵심 선수가 고스란히 팀을 이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남아있는 네임드는 차두리, 고명진, 김진규, 김용대 정도였고 나머지는 폼이 하락했거나 주전경쟁에서 밀렸거나 아니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들이었다. 팀 내외에서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 최용수는 시즌전 2014년을 3백 체제로 운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대전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쓰리백과 포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웅희(축구선수)|이웅희]]를 영입하고 외국인 슬롯 하나를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가능한 장신 수비수 [[오스마르]]로 채웠다. 아디는 떠났지만 기존의 고요한과 김치우, 새로 영입한 [[차두리]], 전역한 최효진까지 수준급 측면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어 아주 불가능하진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선수들이 생소한 쓰리백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전반기 서울은 총체적인 난국에 부딪치게 된다. 김치우와 차두리(최효진)이 좌우에 서고 오스마르-김진규-김주영이 쓰리백을 형성했는데 왼쪽에선 김치우와 오스마르는 발밑이 부드럽고 킥이 좋지만 발이 느렸고, 오른쪽의 차두리와 김주영은 발 빠르고 경합 능력이 좋았지만 기술이 떨어지고 세밀하지 못했다. 완전히 상반된 선수끼리 묶이면서 좌우의 균형이 무너졌고, 정중앙의 김진규도 발이 느려서 이 간극을 메워주지 못하고 본인이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중원은 중원대로 하대성의 공백을 못메워서 볼순환이 안되었다.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한 윙백들이 무작정 뛰는걸로 보완하려다 보니 체력 소모도 극심해 후반전만 가면 양쪽 측면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상황이 너무 안좋다보니, 리그 2경기와 아챔 3경기도 총 5경기를 치른후 오스마르를 미드필더로 올리고 포백으로 회귀했다. 그대로 실패한 실험이 되나 싶었으나 2014년에는 월드컵 브레이크라는 기회가 있었다. 월드컵 브레이크로 재점검 기회를 얻은 선수들의 쓰리백 이해도가 올라가고, 전반기까지는 센터백, 풀백 양쪽에서 애매하다는 평을 듣던 이웅희가 14년 7월 9일 포항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김주영 대신 출전해 탄탄한 수비력을 보이며 단숨에 치고 올라왔으며 좌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고광민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시즌 초반 쓰리백 실패 이후 미드필더에서 뛰던 오스마르를 계속 그 위치에 놓고, 김주영-김진규-이웅희로 쓰리백을 고정. 중앙의 김진규와 오스마르가 빌드업과 조율을 담당하고 왼쪽에 김치우보다 킥은 떨어지지만 한결 젊고 빠른 고광민이 들어왔다. 고광민과 차두리가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가져갈때 생기는 뒷공간을 김주영과 이웅희, 발 빠르고 수비 범위 넓은 두명의 파이터가 훌륭하게 채워주어 균형이 맞아들어가 마침내 쓰리백이 뿌리내렸다.[* 이로인해 윙없는 3-5-2가 자리잡으면서 측면자원인 고요한과 윤일록의 입지가 굉장히 애매해졌다. 고요한은 박스 투 박스로의 전환에 계속 실패하고 풀백, 윙으로 활로를 차던차에 이런 변화가 치명적으로 작용해 2015년까지 고요암 소리를 들었고, 직선적인 윙포워드 윤일록은 에스쿠데로, 박희성과 짝을 이뤄 투톱 알바를 뛰어야 했다.] 2014시즌이 끝나고 김주영이 중국으로 떠나고, 김진규의 노쇠화가 표면에 드러났는데 포멧은 전해와 다르지 않게 가져가면서 사람만 바꿨다. 김주영의 빈자리는 군복무를 마친 김동우와 No.4~5 센터백 정도의 위상이었다가 2014년 여름부터 조금씩 기회를 받기 시작한 김남춘이 메웠으며 김진규의 노쇠화는 오스마르를 밑으로 내리고, 신예 박용우에게 전폭적인 기회를 제공해 메웠다. 2015시즌엔 오스마르와 박용우가 경기중에 위치를 바꾸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2016시즌. 이웅희의 입대로 발빠른 스토퍼가 한명도 남지 않았다. 남은 김동우와 김남춘은 발밑이 부드러워 빌드업에 기여할 수 있었지만 속도와 경합 능력, 수비 범위는 나쁜건 아니지만 한없이 평범했다. 그래서 경기 템포 자체를 느리게 가져가면서 공격 전개 방식을 바꿨다. 기존에는 쓰리백의 중앙에선 선수(김진규, 오스마르, 박용우)가 빌드업을 주도했는데 2016시즌에는 좌우 스토퍼로 오스마르와 김동우를 세우고 빌드업과 오버래핑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중앙에는 인천에서 임대 복귀한 김원식을 세워서 뒷공간 커버와 경합 같은 수비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게 했다. 수비진과 미드필더 사이를 잇는 역할은 부산에서 넘어온 [[주세종]]이 맡았다. 오스마르보다 더 빠르고 활발한 대신 수비와 경합능력이 떨어지는 단점은 후방에서 수비에만 전념하는 김원식의 지원으로 보완했다. 앞뒤로 주세종과 김원식을 두고 자유로워진 오스마르는 서울 입단 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황선홍과 이을용으로 이어지는 암흑기가 끝난 2019시즌에는 오스마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복귀, 신예 김주성이 쓰리백의 중앙에서 빌드업에 관여하고 좌우 스토퍼로 이웅희와 김원균이 서는 스리백을 구상했으나 김주성과 오스마르가 시즌을 앞두고 부상당하며 엎어졌다. 김동우는 2018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로 떠나고 김남춘은 2018시즌 말미에 십자인대 파열로 긴 재활에 들어가, 빌드업 가능한 수비수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당초 백업이었던 정현철과 황현수가 기회를 잡았는데 둘 다 빌드업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닌데다[* 정현철은 오스마르를 보좌하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지만 전담할 수준은 안 된다, 황현수는 황선홍 재임기부터 내내 빌드업 능력 부재를 지적받았다.] 강한 피지컬로 버티며 중원과 전방을 연계시켜 줄 수 있는 페시치마저 부상으로 못나와서 공격작업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오스마르가 4월에 복귀하면서 개선은 되었으나 역으로 오스마르만 조지면 된다고 생각한 상대팀이 온갖 폭력을 자행하면서 오스마르의 코뼈는 성할날이 없었다. 정현철이 빌드업 보조로 오스마르를 지원하고, 좌우 스토퍼들이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해서 황현수가 공격 포인트를 제법 쏠쏠하게 쌓는 수확이 있었으나 김원균은 5월 25일 포항전 전반32분 부상으로 시즌 아웃, 이웅희는 5월 19일 상주전에서 부상 이탈했다 6월 22일 대구전에 복귀했으나 완전히 하락세, 김원균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아 한동안 주전으로 나선 김원식도 경합, 헤딩, 속도 무엇하나 되지 않는 심각하게 부진으로 수비진이 완전히 무너졌다. 설상가상 프런트가 최용수 감독의 영입요구를 모두 무시해서 한 여름에 로테이션도 없이 뛰어야 했던 윙백 윤종규와 고광민이 지쳐 퍼지면서 측면도 붕괴되었다. 보다 못한 최용수 감독은 라인업에 변화를 줘서 신예 김주성을 왼쪽 스토퍼로, 오스마르는 다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고정, 미드필더 정현철을 스위퍼로 기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쓰리백 정착 이후 공격진 운영에 있어 주된 특징은 윙 포워드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용수식 쓰리백에서 측면은 철저히 윙백들이 전담한다. 서울의 측면자원들은 윙백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갖추던가, 활동량과 조율능력을 키워 중앙에 서던가, 이도저도 아니면 최전방에 빠른 발 믿고 투톱으로 서게 된다. 직선적인 윙포워드 윤일록은 최용수 체제에선 투톱으로 선적도 있고, 기용은 많이 되었으나 황선홍 시절만큼 좋은 생산력을 보이진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